백수가 더 바쁘다는 말이 있다. 이번 주의 내가 딱 그 말에 적합한 예시였달까? 월요일엔 친구네 이사를 도와줬다. 이사를 도와줬다기 보다, 잘 얻어먹고 잘 마시고 왔다는 말이 적합하다. 사진 속 삽겹살은 우리의 단골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구파발이모네다. 가격은 서울 시내에서 먹는 것과 똑같다. 근데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찍지 못했는데 이 집의 매력은 무료로 나오는 반찬들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계란찜과 된장찌개가 무료로 나온다. 그것도 엄청 맛있게.
구파발이모네에서 이모를 한 번도 못봤지만, 어쨌든 여긴 정말 추천하고 싶은 그런집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집 같은데 점원분들 모두 너무 친절해서 내가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집이다. 점심시간이 되니 주변에 있는 직장인들이 다 이 곳으로 오는 것처럼 인기가 넘쳐 흐르는 곳이다.
본격적으로 짐을 나르기 전도 아니고, 그냥 친구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찻잔에 말리부를 즐겨보았다. 오랜만에 먹으니까 더 맛있던데? 근데 말리부에 아주 적합한 안주를 찾아내서 더 기뻤달까. 온 국민의 간식인 엑설런트 아이스크림과 말리부를 함께 먹어보시길 바란다. 정말 극강의 조화다. 약간 씁쓸한 말리부의 끝 맛을 엑설런트가 잡아준다. 오 마이 엑설런트!
나는 아직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있고, 가능한 오래오래 얹혀 살고 싶단 생각이다. 뭐, 물론 가끔 혹은 자주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한국에서의 집은 '재테크의 극강' 혹은 '내가 깔고 있는 듯 하나, 실상 은행이 나를 깔고 있는 것' 이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집은 은행이 구해주는 거고, 난 은행에 노예가 되는거지~' 하는 농담은 들어도 들어도 씁쓸하다. 의식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렇게 계속해서 배웠지만 주宙가 어쩌다가 이렇게 인생의 주인이 되어버렸는지 그저 아이러니한 상황이 웃기기만 하다.
발렌타인 데이가 이틀 전이었다. 여전히 나는 발렌타인 데이가 남자가 주는 날인지, 여자가 주는 날인지 헷갈렸는데 동생의 여자친구가 수제로 초콜렛을 만들어서 선물해줬다는 얘기를 들으니 '아 여자가 주는 날이구나'했다.
나와 남자친구는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 아니다. 자기는 선물을 주는 것보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좋다나 뭐라나. 나는 선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게 막 기념일이어서 한다기 보다 걷다가 예쁘고 입혀보고 싶은 게 생기면 사서 선물한다. 그래서 가끔 남자친구는 '자꾸 나만 받아서 미안해서 그렇지' 한다. 미안하라고 한 일은 아닌데 하다가 남자친구가 선물이라고 사온 것들을 보면 열불이 날 적이 몇 번 있다.
여자의 물건에 대해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얘가 나를 제대로 보긴 한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물건을 사올 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친구가 초콜릿을 보냈다. 코코부르니 프로바이오틱스 파베 초콜릿. 생초콜릿인데 정말 맛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안느끼하고 맛있네...? 아무리 먹어도.. 어찌됐던 해피 해비 발렌타인! (나도 내일은 선물사러 가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밀란 쿤데라는 천재인 것 같다. 나는 60페이지가 넘게 쓴 유머의 의미를 저렇게 한 문단에 완벽하게 정리하다니. 현재 읽고 있는 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는 끊임없이 무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인생에 어떤 여백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라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지 계속해서 말을한다. 그래서 상당히 찌질해보인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처럼 밀란 쿤데라도, 자신의 말들로 여백에 대한 공포 그러니까 인생의 공허함을 끊임없이 채워보려고 한걸까. 뭘까, 읽으면 읽을 수록 오로지 궁금한 것은 그것 하나다. 그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근데 또 그 찌질함이 저렇게 정갈한 글로 나타나면 '저런 글도 못쓰면서 내가 감히 누굴 찌질하다고..'하며 자책하게 한다.
이번 주가 굉장히 바빴던 이유 중 하나였던 날.
내가 대학원에서 한 공부를 통해 직업을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한 공부는 가시적인 이윤을 내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윤을 가장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멈춘 것은 오래됐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살려볼 법한 직무들이 있고, 자리가 나서 일단은 지원을 했다.
서류도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류가 붙었고 필기전형을 봤다. 필기 시험에서 나는 일종의 포비아를 느꼈는데,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면 아찔하다. 왜 느꼈을까. 유추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하나는, 그런 식의 시험을 처음 쳐봤기 때문이지 않을까. 직업과 관련해서 면접은 많이 봤지만 무언가 시간내에 글을 완성하는 시험은 처음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이렇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완벽하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업무라는 건 좀 다른 문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적정한 완성 수준을 쫓아 잘 포장해서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리해내지 못해 시간만 흘러보냈다.
뭐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한 직무와는 다른 분야라는 것도 깨닫게 된 계기인 하루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렇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에는 너무 쪼다같은 아이다. 좋아하는 것에 내 이름을 넣어서 평가받는 일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아 그만 둔 공부를, 업으로 삼으려고 했던 나는 고통스러워해야 마땅했다. 그래서 이번주가 유독 힘들었다.
시험을 보고 난 날, 우주에서 나를 가장 많이 걱정하는 사람 중 하나를 만나러 갔다.
대학교 시절 만나, 심심하면 새벽에 내게 전화를 걸어 '나와~ 데리러 갈게'하던 언니였다. 우리는 그렇게 북악 스카이, 인천 앞바다 등을 돌아다니며 졸린 눈을 비벼가며 놀았다. 그냥 수다를 떨고, 떡볶이를 사먹고 했던 것이 전부였던 그 때였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한다. 사랑에 헌신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걱정했던 언니가 결혼을 하다니.
그랬던 언니를 오랜만에 만나 이얘기 저얘기를 나눴다. 언니는 나의 연애를 걱정해 주었고, 나는 언니의 결혼 준비 과정을 걱정했다.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자신이 친한 언니의 결혼식에 다녀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다들 대단해 보였어. 그 모든 것을 해냈다는게."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언니는 이 전에 내가 알던 모습보다 훨씬 단단해보였다. 좋은 사람의 사랑을 한 가득 받아서 그런 것 일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던 많은 일을 경험했고 그를 통해 성장한 듯 보였다. 나이를 먹고 생활의 폭이 넓어짐으로써 얻는다는 그 연륜. 언니에게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서로 걱정을 하며 야금야금 주어먹은 편백찜. 여기는 방이동의 육분삼십. 처음 먹어봤는데, 상당히 깔끔했다. 여기 소고기 덮밥이 정말 맛있으니, 주변에 회사가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기가 진짜 잔뜩 들어가 있다.
백수의 운전면허 도전기는 계속된다. 학과 수업을 마친 뒤, 기능 교육 및 시험은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았다. 와 2월엔 진짜 운전면허 따기 너무 어렵다. 대학생들도 많고 취준생들도 많고(뭐래..지도 취준생이면서..) 기능 교육 및 시험 안에만 필기시험을 보면 되는데, 우리집은 도봉 면허 시험장이 가장 가까웠지만 나는 이번주 일정상 강남면허시험장에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시험 볼 수 있어요!)
강남면허시험장은 삼성역 1번 출구에서 한 10분 안되게 걸어가면 된다. 비용은 신체검사비 포함 16,000원이고,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다행히 아침에 벼락치기로 보고 간 문제들이 많이 나와줘서 90점으로 합격했다. 되게 쓸데없이 잘 봐서 놀랐는데, 무튼 합격했으니 즐거워?
그리고 바로 어제, 기능 교육을 4시간 한 뒤에 시험을 봤다. 3시간을 정말 호되게 혼나고 기가 잔뜩 죽은 상태에서 1시간 혼자 연습했는데 다행히 합격했다. 되게 웃긴게, 그렇게 문제가 되던 경사는 잘 지나갔는데 맨 처음에 좌회전 신호를 안넣어서 오점이 마이너스 됐다. 내가 어느 정도로 걱정스러웠냐면, 내가 합격하고 나서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놀랄정도였다. 약간 '어떻게 저 사람이 합격을 하지...?' 이런 눈초리로 날 보던걸..
기능 시험도 합격했다. 이제 도로 주행만이 남았다. 근데 난 20키로도 안되는 속도도 너무 무서웠는데, 50키로의 속도를 어떻게 내서 달리지..?
삼성역 테라로사는 확실히 점심 이전 혹은 점심 이후 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점심시간에는 정말 주변의 모든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느낌. 그래도 확실히 매장 규모가 있다보니 웅성웅성하는 느낌은 있지만, 견디지 못하겠다 싶진 않다. 커피야 워낙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니, 믿고 주문해서 마셔도 좋다.
이렇게 주말이 지나간다. 남은 2월은 베트남에서 보낼 예정이다. 어떤 여행이 될지, 그 여행으로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지. 익숙한 여행지로 떠나지만 여전히 즐겁다.
이번 주엔 생각을 좀 많이한 백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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