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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팁

스페인 부르봉 왕가 역사 / 나폴레옹 / 마누엘 고도이 / 프란시스코 고야

by raumkim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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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회화를 개척한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동경하던 아라곤 지방의 평민은 이성 중심의 신고전주의에 대항하여 꿈과 환상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그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모두 얻은 스페인의 빛의 세기를 고야는 그림으로 기록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중병을 앓은 뒤, 후유증으로 귀머거리가 된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된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환멸감을 직시하고, 어둠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는 카를로스 3세 시절 궁정화가로 임명된다. 뒤이어 왕이된 카를로스 4세 왕실의 일상을 그리며 그는 대부분의 삶을 보냈다. 궁정화가로서 아라곤의 화가는 카를로스 4세의 무능함, 부패함을 목격함과 동시에 그의 왕실의 퇴폐적인 생활을 목도했다. 카를로스 4세 왕실을 향한 그의 감정은 <카를로스 4세 가족>이라는 제목의 그림에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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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왕실 화가들이 그린 왕실 가족들의 초상화에서는 그들의 '우아함과 고매함'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화 속 왕실 가족은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족 사진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의 시인 고티에는 이 그림을 두고 '복권에 당첨된 빵집 주인 일가족' 을 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를로스 4세 가족>에서 가운데 있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네 길목에 서있는 육중한 몸을 지닌 욕심 많은 아주머니같은 이 여성이 카를로스 4세의 아내이자 왕비 마리아 루이사다. 그녀의 문란한 성생활은 초상화 속 공주와 왕자들이 카를로스 4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왕궁에 파다하게 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los_IV_por_Goya_(Academia_de_la_Historia).jpg / 프란시스코 4세와 마누엘 고도이(위키피디아)

 

마리아 루이사는 왕실 근위병이자 하급 귀족이었던 마누엘 고도이(오른쪽)에게 첫 눈에 반해버린 그녀는, 그를 매일 밤 침실에 불러 들였다고 한다. 마누엘 고도이는 왕비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카를로스 4세 왕실의 재상이 된다.

 

재상이 된 마누엘 고도이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스페인의 땅을 프랑스에게 헌납한다. 물론 마누엘 고도이는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프랑스 군이 스페인에 더 빨리 쳐들어 왔을거야!'라는 식으로 주장하며 프랑스와의 평화를 수호한 자신을 '평화의 왕자'라 부르는 것에 흡족해 했다고 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나폴레옹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르투갈을 점령하고자, 마누엘 고도이에게 '포르투갈 빨리 갈 수 있게 스페인 땅 좀 열어줘~'라고 제안한다. 마누엘 고도이는 나폴레옹에게 '포르투갈의 왕' 자리를 약속 받고 프랑스 군에게 스페인을 열어준다. 이때,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은 스페인을 공격한다.

 

카를로스 4세는 왕실과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소요를 진정 시키기 위해 아들 페르난도 7세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1808년 5월 2일 나폴레옹의 장군 뮈라가 카를로스 4세의 어린 딸과 아들을 프랑스로 유배 보내려고 마드리드 왕궁에서 옮기려 하는데, 마드리드의 시민들이 이를 보고 분개하여 프랑스 군을 공격한다. 이를 5월 2일 봉기라 부른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 날의 치열함을 아래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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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말을 탄 프랑스 군들의 생김새가 낯설다. 백인도 아니고 이슬람 복장을 하고 있기 떄문이다. 알고보니, 당시 나폴레옹이 이집트 사람들을 고용해 용병 군대를 구성했다고 한다. 이들 용병 군대의 이름이 '맘루크 기병대'였는데, 아래 그림의 또 다른 이름은 <맘루크 기병대의 돌격>이라고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프랑스를 향한 엄청난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카를로스 4세 왕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부패와 무능에 환멸을 느낀다. 반면, 프랑스의 자유사상에 고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8년 프랑스 군의 무자비한 공격을 보고 그 환상이 모두 깨졌다.

마드리드 시민들을 포함한 스페인 전역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자 애썼으나, 나폴레옹이 자신의 사촌 조제프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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