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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발터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 3판 요약) 1

by raumkim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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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105-106)

 

 발터 벤야민은 기술을 통하여 원래의 대상을 "복제"하는 행위는 원래의 대상의 아우라를 위축시키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이 말한 기술을 크게 사진기 등을 이용한 "기술"과 손을 활용하는 "기술"을 나누어 설명했고, 후자에 비해 전자로 만들어진 복제에 대해서는 원래의 상이 권위를 내세우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인간의 손으로 복제하는 것은 기술이 포착하는 거에 비해 한계가 있다. 

"기술적 복제는 사진에서는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렌즈로는 포착되지만 인간의 육안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작의 모습들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 있고,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계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포착할 수 있다."(104)

 

 둘째: 원작을 보기 위한 수용자의 노력을 줄일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적 복제는 원작으로 하여금 사진이나 음반의 형태로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준다. 사원은 제자리를 떠나 예술 애호가의 작업실에서 수용되고, 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주된 합창곡은 방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105)

 > 위키 백과를 예시로 들 수 있지 않을까 

 

walter benjamin 위키백과

기술복제는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그러니까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에서 떼낸다. 그럼으로써 생기는 두 가지 특징은 대량화와 현재화이다. 현재화는 앞서 언급한 기술복제가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 두번째 이유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복제의 이러한 특징은 원본이 가지고 있었던 아우라, 그러니까 "일회성"을 파괴한다. 

 

 아우라는 "먼 곳에서" "일회적"으로 발생한다. / 예술의 정치화

 : 그런데 기술복제시대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물을 자신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지고 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기술복제시대의 인간이 지향하는 지각 방식이 '아우라'를 위축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까이 있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의 반대말로 읽어야 하며, 멀리 있는 것은 "범접 불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은 이 범접 불가한 것을 '제의적 특성'으로 해석한다.

 전통의 맥락에서 예술의 가장 첫번째 사용 가치는 제의였다. 그러다가 예술은 예술 그자체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일론에서 생겨난 것이 "순수"예술의 이념이라는 형태를 띤 일종의 부정적 신학이다. 이 부정적 신학은 예술에서 모든 사회적인 기능, 그리고 대상의 소재를 통해 규정하는 일을 일체 거부한다.(112))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계기는 예술이 '제의'에 기생적인 역할을 하다가, 그것에서 독립하여 '실천' 그러니까 '정치'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제의가치와 전시가치

 : 벤야민은 인물 사진을 예로 들며,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들 중 인물 사진에만 "제의 가치"가 거의 마지막까지 존재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의 제의적 가치는 멀리 있거나 이미 죽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거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마지막 도피처를 찾았다. (117))

  

EUGÈNE ATGET / PARIS MUSÉES / MUSÉE CARNAVALET-HISTOIRE DE PARIS el pais 출처

 

 벤야민은 외젠 아젯(Eugene Atget, 1857-1927)이라는 프랑스 사진작가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외젠 아젯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1900년경의 파리 거리를 포착했다. 벤야민에게 그의 작품은 마치 "범행 현장을 촬영한 것"같은 것이었다. 범행 현장을 사진 찍는 것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벤야민은 "사람없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역사적 사건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와 연관이 있다고 봤다.(117) 이것은 분명한 정치적 의미를 띤 행위이다. 

 

 아젯의 사진과 더불어 화보 신문들(periodicos ilustrados)은 독자에게 전통적인 수용방식과 다른 것을 요구한다. 화보신문들은 사진과 함께 사진을 해석하는데 일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설명문구를 함께 실었다. 벤야민은 이 설명문구의 옳고 그름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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