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스위스의 매력! 생 사포항 트레킹

* 해당 스위스 여행은 2018년에 진행된 것입니다. 현재의 물가 및 상황과 다를 수 있음을 참고하세요!

 

 스위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했다. 읽지도 못하겠는 역인 Chexbres-Village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와 날씨봐!' 라고 연신 외쳤다. 스위스 여행에서는 유독 날씨 운이 따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날씨 앱 Meteo Swiss를 열어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날 밤 남자친구는 다음 날 우리가 가기로 했던 곳의 날씨가 너무 안좋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조금 멀어도 라보지구Lavaux와 몽트뢰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라고 남자친구가 말했다. 라보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곳으로 포도나무 밭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줬다. "거긴 날씨가 괜찮대?"라고 내가 묻자, "응!"이라고 그가 답한다. 그러면 "가야지!" 라고 말했다. 그렇게 흘러온 이 곳에서 우리는 생 사포항(Saint Saphorin)까지 걷기로 했다. 

 

 

 

 인터라켄 서역에서 Chexbres-Village역까지는 두 번의 환승을 거쳐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반을 넘어서면 커다란 호수를 끼고 달리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행복하니 멀어도 가볼만한 길이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Chexbres-Village에서 포도밭 트레킹까지는 10분정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때만 구글 지도를 사용했다. 왜냐면, 

 

 굳이 길을 찾지 않아도 길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도밭과 호수를 끼고 걷기만 하면 된다. 포도나무 근처로 가면 포도향이 가득히 코에 와닿는다. "그래! 이런 하늘을 보려고 내가 스위스에 왔다고!"라고 소리쳤다. 정말 아름다웠다. 따스한 공기도, 푸르른 하늘과 파릇파릇한 나무도 모두가.

 걷다보면 나눠진 공간에 심어진 포도종 혹은 그것으로 와인을 만드는 방법 등을 설명해 놓은 안내표지판이 있다. 와인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그냥 뭔가를 알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남자친구는 꼼꼼이 읽어 내려갔다. 

 트래킹이라고 해서 길의 경사가 급하고 걷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유로운 산책길에 가까운 길에서 우리는 삼각대를 펼쳐놓고 카메라에 우리를 담았다. 사진 속의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이 영 어색한 나는 되려 오버 액션을 하고 있고, 사진 찍는 것에 자신있다던 남자친구는 기계적인 웃음만 짓고 있다.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

 그때도 지금도 내가 느끼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라 일생을 보내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 거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숨을 편히 들이 마쉬고 내쉬며 좋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날의 공기와 햇살을 맘껏 느끼는 것. 행운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런 것이 아니겠나. 

 

 

https://goo.gl/maps/ZDq1aRuQLfbHCGLV9

 

Café du Raisin

 그렇게 우리는 레만호를 끼고 쭉 내려와 생 사포항역에 도착했다. 남자친구가 "몽트뢰로 가는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뭐라도 한 잔 마실까? 우리 돈 있나?" 라고 묻는다. 쓴 돈이 없으니, 돈이 없을 이유도 없었다. 적은 예산인데, 와인을 마시는 게 맞는 걸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하고 들어간 Cafe du Raisin. 

 아니나 다를까 이 곳에서 쓴 돈이 스위스에서 쓴 돈 중 가장 잘쓴 돈이었다. 지나칠 일탈이 아닐까 조마조마했지만 말이다. 1층 바와 테이블은 이미 손님으로 가득 찼다. 햇살이 좋으니 테라스에 앉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테라스 바로 옆에 앉아 가장 저렴한 화이트 와인 두잔을 시켰다. 

 

생각보다 와인 맛이 너무 달지도, 너무 맛이 없지도 않아서 놀랐다. 근데 무엇보다 이곳 직원들이 매우 상냥하고, 테라스 자리에서 바라보는 레만호가 일품이다.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이때 잠깐 좋아하고 나서 나는 다시 허리띠를 한참이나 졸라매야했다.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도, 커피도 사마시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 안하는 돈인데 왜그렇게 궁상을 떨었나 싶다가도, 모든 것이 완벽하고 풍족했으면 그때의 여행이 얼마나 기억에 남았을까 싶을 때가 많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식사를 하러 들어오는 관광객과 거주민들도 꽤나 보였다. 우리는 몽트뢰에서 챙겨온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으니, 이곳에서의 점심은 다음번의 우리가 즐겨볼수있도록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