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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김필균 문학하는 마음

by raumkim 20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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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고민은 예를 들어 그런 것이다.
대출을 혹은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유학에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한국에 돌아와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문학이 좋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 혹은 스페인 문학을 소개하는 건 더 좋은 일이지만서도 '내가 굶어 죽는 와중이어도 과연 그것들이 좋을까?'라는 질문에 내 스스로 답변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몇 없고, 그나마도 친하지 않은 동료들이 집 걱정, 월세 걱정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부터다. 대학원에 다닐때는 큰 부담감이 없었다. 나와 공부하는 이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논문을 빨리 쓸 수 있을까?'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함께 졸업한 이들은 이제 모여서 '어떻게 먹고 사냐'를 고민한다. 다만 그 공간에서 나는 조금 피터팬 같은 혹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일상에서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과연 돈을 많이 벌지 않고도, 하고 싶은일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을 정정해야 겠다.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돈을 적게 벌면서도 나는 '버틸 있을까?'


예상하고 계실 테지만 연극만으로 먹고살기는 쉽지 않아요. 요즘 많이 떠올리는 생각은 '노릇'과 '시늉'이라는 말입니다. 알고보면 창작이란 참 이기적인 행위인데, 그러다 보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노릇이라는 말과 만나야 해요. 자식 노릇, 형제 노릇, 배우자 노릇, 부모 노릇.... 나의 시간을 조금만 더 견뎌달라는, 버텨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거죠. 그래서 오래 이 일을 하려면 누구보다 생활인으로서의 태도를 지녀야 해요. 창작자라는 이름표를 좀 더 달고 싶거든 역설적이게도 창작자가 아닌 이름표도 받아들이고 시늉해야 하는 것이죠.

고재귀, 극작가의 마음 p. 157

'문학하는 마음'은 이러한 나의 고민을 미리 하고 그리고 내가 꿈꾸는 혹은 꿈꿨던 미래를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림책 작가, 어린이, 청소년 문학 작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 웹 소설 작가, 문학 평론가, 서평가, 문학잡지 편집자 그리고 문학 기자들은 이 책에서 모두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우울하고,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문학'자체에 대해 논한다기 보다 '문학 하는 이들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밖이었다. 그들 모두 그렇게 넉넉치 않은 삶을 살고 있고, 무엇보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창작자 즉 문학 하는 사람이 아닌 이름표라도 받아드리고 그 이름표에 걸맞는 삶을 살기도 해야 한다는 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끝낸다. 조금 더 오래 글을 쓰고, 그것으로 느끼는 기쁨을 조금 더 오래 느끼기 위해서는 말이다.(에세이스트 정여울도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현재의 나는 문학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이름 표를 지니고 살고 있다. 처음엔 이들과 같이 '문학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잠시 시늉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늉이 지쳤거나 혹은 너무 (경제적으로) 안락하다는 이유로 조금 더 커다란 이름표를 시늉이 아닌 내거로 만들고 싶어진거다.
실은 나는 여전히 문학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며 여러 이름표들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더 크고 더 안락한 이름표를 내 것이라 만들며 살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한다.


제 인생의 이런저런 고민들과 숙제들을 나름대로 해결해보려는 와중에 공부라는 것을 열심히 하게 됐고, 그 공부의 성과로 '감히 이런 얘기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해서 제가 느낀 어떤 것들을 쓰고 있어요.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생각을 진행해 나가는 것은 확실히 평론이라는 엄숙한 장르의 글에서는 흔히 채택되는 방식은 아니죠.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마음 p. 246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며(어떤 내용을 다루건 간에), 그 글을 통해 나를 포함한 주변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형철 평론가가 현재 평론이라는 장르의 주된 분위기를 비판하는 것이 공감이 됐다.
원래는 중남미 지역학을 공부하려다가, 문학으로 선회한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욕심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중남미 문학이 재밌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굉장히 독특했음을 깨닫았다. 그래서 더 읽고 싶었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들을 느끼며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물론 그런 기대를 가지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나는 작지 않은 좌절감을 자주 느꼈다. 몇몇 교수들은 나의 생각에 동조해줬지만 그래도 우리는 교육 혹은 순수학문의 차원에서 문학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와 같은 글은 지나치게 가볍고 누구나 쓸 수 있다며 힐난 하는 이들이 있었다.(물론 나의 동료들 중에서도 후자의 의견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여전히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신형철 평론가와 금정연 서평가의 얘기에 기반하여 말하자면 '이런 글도 누군가는 써야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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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읽으면 참 좋을 인터뷰집 같다. 굳이 문학이 아니어도 좋다. 꿈이 있어 시작하고 도전한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에게 충족을 주지 않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거란건 알았지만 너무 버겁게 느껴져 포기해야 하나 할때. 혹은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완벽한 공간이라고 생각한 곳이 생각했던 것보단 아닐때. 그럴때 읽으면 좋을 그런 두고두고 읽을 법한 인터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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