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책을 출간하고 갖은 인터뷰에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디디의 우산"에 실린 소설들은 제가 쓴 소설 중에 현실이 가장 많이 반영된 소설입니다."(채널예스와의 인터뷰)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녀는 자기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밝혔다. 두 편의 소설이 들어가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나중에 완성된 소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온 국민이 목놓아 외치던 2017년 가을에 연재되었다. 결국 이 소설은 지난 10년간 우리를 괴롭혔던 두 대통령과 그들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데, 작가는 그것들에 완전히 얽매어져 있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만약 독자가지난 10년간의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지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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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라는 첫번째 중편 소설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한 남성의 깊은 상실감을 그려내고, 그런 그가 세상에 다시 나와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다. 그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dd'의 온도가 남아있는 듯한 물건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이다.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어 무해한 그들, 내 이웃. 유령적이고도 관념적인 그 존재들은 드디어 물리적 존재가 되었다. 사악한 이웃의 벽을 두들기는 인간으로.
p. 91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걸 믿지 않는다. '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타자'가 있어야 한다. 나는 위의 문장을 읽고 '나'와 '타자'의 관계를 참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만 겨우 잘 수 있는 고시원에서 큰 소리의 음악을 드는 d에 항의하기 위해서 옆방 사람들은 벽을 친다. 항의조차도 들리지 않는 사회에서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되어 '타자'가 되어 버린 그들이 또 다른 '타자'를 인식하면서 '나'라는 존재로 인식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비상한 일은 늘 일상에서 조짐을 보이게 마련이라고 (...) 불시에 라는 것은 내 생각에 우리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전쟁을 봐라. 맥락 없는 전쟁이 없고 ... 방사능도 마찬가지,
이 상황을 봐라. 얼마나 투명하고 얼마나 좆같냐. 그리고 그 좆같음이 눈에 보이잖아? 그냥 조용히 아닌 척하고 망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p. 129 - p. 130
지난 10년간 두 대통령이 저지른 악행이 세상에 까발려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아, 내가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얼마나 찔리고 민망할까. 사람들은 몰랐던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 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 당장 먹고 사는게 벅차면 세상살이에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고, 당장 내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건이라면 굳이 내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작가는 그렇게 고요한 세상이 만들어 낸 현 시대의 몰골을 소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하길 폭력은 전 세계와의 단절을 일으키는데, 이 때문에 폭력은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황정은의 이소설에서 폭력은 '혁명'을 의미하는 듯하다. 소설의 두 번째 중편 소설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에서 주인공은 박근혜 탄핵 집회때에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고 뿌듯해 했던 '평화시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지금껏 폭력이 있었던 많은 이들의 항거와 저항, 집회들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라고 주인공은 계속해서 묻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와 도덕 그리고 비폭력이 "상식적으로 봤을때" 지향해야할 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살다가 우리는 2015년부터 어떠한 몰골을 마주했는가.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듯 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 얼마나 자주 생각을 ...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p. 265
상식적인 것이 다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던히 노력하거나, 상식 밖의 세계에 놓여야 한다. 주인공은 시력의 일정부분을 잃어가면서, '상식적인 것'에 대해 더욱 깊이 고찰해 낸다. 습관처럼이라는 말은 기계처럼 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다. 기계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상식이라는 것이 엄청난 사고의 과정에 의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식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타자로 만들고 있다는 점인데. 아마도 '상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상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상식'과는 반대되는 삶을 사는 '타자'를 만들어 내 사회에서 소외시켜야 했을 것이다. 이것을 폭력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 너무 당연해서 말조차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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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에서 시민들의 혁명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주인공의 씁쓸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주인공이 보기에 혁명의 성공이 '완벽한 세계'를 이룩해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미지의 미래에 놓여 있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혁명이 끝이 난 것이지,혁명이 완전히 끝이 난 것이 아님을 작가는 말한다. 단절과 침묵보다는 끊임없이 말하는 세상, 그것의 도래를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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