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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제임스 웰든 존슨-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by raumkim 2020.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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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자서전이어야 했는가?

자서전: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전기

자신이 백인임을 의심하지 않던 소설 속 화자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흑인성과 백인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소설은 자서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형식의 패러디를 시행하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사회 지도자와 같은 영웅시 되는 인물을 중심에 둔다. 그러한 자서전에서 그려지는 몇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은, 그 인물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이 책,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에는 영웅시 될 인물이 부재하다. 아, 물론 주인공이 '흑인의 지도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결정에는 두 가지의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음악과 관련된 자신의 재능이 흑인들의 위상을 세워줄 수 있다는 비이기적 욕망은 자신 개인에게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안겨줄 것이라는 이기적 욕망과 부딫히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자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유럽에서의 생활을 정리 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잔혹한 흑인 폭행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연료와 횃불을 가져왔다. 그리고 불길은 힘을 모으는 듯 잠시 웅크리더니 곧 희생자의 머리까지 높게 치솟아 올랐다. 그는 쇠사슬에 죄인 채 꿈틀대며 몸부림치다가 신음과 비명소리를 내질렀다.나는 그 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신음과 비명소리는 불길과 연기 속에 묻혔지만 눈구멍에서 튀어나온 그의 눈은 이리저리 구르면서 헛되이 도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176

남북전쟁이후 흑인 노예제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은 사회에서 동물만도 못함 취급을 받았다. 동물을 학대하면 법으로 처벌받았지만, 흑인은 언급되었다시피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는 다름아닌 '수치심'을 느낀다.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동물보다 더 하대받는 인종그룹과 같은 처지라는데서 오는 감정이다. 그는 그 순간을 외면하고, 방관한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흑인'을 대표하고자 하는 꿈을 버린다.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 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자서전이라면 위와 같은 목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자서전 형식의 패러디는 화자, 즉 당시 중산층 흑인들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2.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진실의 문제

남북전쟁이후에도 계속되는 흑인에 대한 폭력은 이 책의 중요한 화두이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지나칠 정도로 흑인에 대하여 편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백인 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말이지 미국문학에 그려진 미국 흑인의 이상적이고 정형화된 문학적 개념은 너무 강해서 일반 독자들이 흑인들을 어떤 다른 배경에서 생각해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 흑인의 모습은 다리를 끌며 밴조나 뜯고 히죽거리는 만사태평형으로 정형화되어 있으며 일반 독자들은 아직 흑인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설득되지 않았다. 흑인이 사회적으로 자기 향상을 시도하는 노력은 '백인 문명'의 우스꽝스러운 희화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점잖은 집에서 상당한 문화를 누리며 살고 당연히 '백인들과 마찬가지로'행동하는 유색인들을 다루는 소설은 코믹 오페라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p. 159 -160

백인들이 인식하는 흑인의 모든 것은 분명하게도 그들의 것보다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물리적으로 같은 것을 백인과 흑인이 누리고 있다고 한들, 흑인이 누리는 삶은 '그저 백인인 우리를 따라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는 '재정적,지적 성장에 걸맞게 자신들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개선해보려고 애쓰는(78-79)' 노력을 두고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된 인간 본성의 한 충동(79)'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백인은 왜 끊임없이 유색인종을 구별하려 하는가?

인간의 '구별'하는 행위의 가장 밑 바탕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노예 해방 이후 백인들은 유색인종들과 언제든지 섞일 수 있다는 '상상의'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질적인 것이 자신들만의 공간에 들어오게 되는 변화에서 느끼는 불안전함을 배제하기 위해서 백인들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정책들을 계속해 온 것이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한 방울 법칙'이다.

소설은 이러한 경계를 끊임없이 의문시 한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물라토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그러하다. 물리적인 생김새로는 유색인종이지만, 화자는 당시 백인 사회가 누리던 많은 것들을 향유했으며 같은 수준의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피부색에 따라 층화된 계층에 이 화자를 어디에 둘 수 있겠는가? 확실히 대답할 수 없다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 체계 자체를 의문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3. 패싱의 문제

패싱: 어떤 사람이 다른 사회 집단의 구성원인양 행동하는 일

내 인생철학은 이렇소. 가능한 한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라, 그리고 너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도록 노력하라. 이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고 이 세상의 고통을 완화시키려 하는 것은 노력의 낭비일 따름이오. 태평양으로 물을 다 쏟아 부어 대서양을 비우려는 거나 마찬가진거지.

140

지금의 나에 만족하고 달리 되기를 원하지 않게 만든 것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그러나 때로 내 사라진 꿈과 죽어버린 야망과 희생당한 재능의 유일한 가시적 잔존물인, 이제는 빠른 속도로 노랗게 변색되가는 내 원고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조그만 상자를 열어 볼 때면, 나는 결국 하찮은 부분을 선택한 것이라는, 한 그릇의 죽을 위해 나의 출생권을 팔아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199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한 방울의 법칙에 따르면 화자는 흑인이 맞다. 그러나 이 정책 자체를 의문시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화자에게 흑인됨 혹은 흑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 자체가 폭력 아닌가?'

백인들의 인식론 자체는 흑인문학에서 여러차례 문제시되어 왔으며, 오늘날의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장르의 단골 주제이다. 이 책 역시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조금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으로 고통받았던 유색인들이 다시금 피부색에 따른 역할들을 개인에게 짐 지우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라고 작가는 책을 통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화자와 유럽 일정을 함께 했던 부자 친구의 말은 자칫하면 이기적일 법한 말은, 흑인이었던 작가가 느꼈던 욕망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작가의 반대편 마음에는 화자의 마지막 한탄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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