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녀들(las meninas)>은 원래 제목이 없는 그림이었다. 그러다 여러 이름이 붙여졌다. (<시녀들과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와 난쟁이 여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의 자화상>, <펠리페 4세의 가족>) 1819년부터 프라도 미술관에 보관된 이 그림은 1834년 처음으로 <시녀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시대에 따른 이름의 변화는 각 시대별로 이 그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즉 <시녀들>의 이름 변천사를 보면 시대별로 미술 연구가가 어떤 관심사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2/ 그림 속 공간은 펠리페 4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왕자의 침실이었다. 그가 사망하자 펠리페 4세는 이 곳을 벨라스케스의 화실로 지정한다. 펠리페 4세의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향한 총애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당시 예술 좀 하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여행을 꿈꿀 정도로 이탈리아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꼽혔다.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에는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리페 4세는 그의 궁정화가로서의 봉급을 모두 유지해줬다.
3/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라는 직책 말고도 여러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 문 담당 왕의 하인
- 의상 보관실의 관리(왕이 옷을 입고 벗을 때 의상을 운반하는 일)
- 왕실의 시종(왕의 처소의 열쇠를 맡았음)
- 왕궁 공사 감독 등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벨라스케스의 허리춤에 벨트가 있고 거기에 달려 있는 것들이 왕실 문의 열쇠로 보인다. 왕실 문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왕실 곳곳을 누비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시 왕실에서의 그의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그의 왕궁 관직들은 사실상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벨라스케스는 위의 업무를 수행하느라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관직을 유지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벨라스케스가 살던 시기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향한 두 가지 시선이 공존했다. 하나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술직'으로서의 삶이자 하대 받는 삶이었다. 만약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고상한 기호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는 것을 간절히 바라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에게 화가라는 직업은 쓸모가 없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해 위의 직책들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4/ <시녀들> 속 벨라스케스의 가슴팍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산티아고 성인의 이름을 걸고 산티아고 순례객들을 지키는 산티아고 기사단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녀들>이 완성된 연도는 1656년이고,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산티아고 기사단이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이다. 다시 말해, <시녀들>이 완성됐을 시기에 그림 속 벨라스케스의 가슴 팍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두고 "누가 완성된 그림 위에 붉은 십자가를 그렸을까?"라는 의문이 생겨났고, 현재까지는 화가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정설로 꼽힌다.
산티아고 기사단원이라는 것만큼 '고귀하고 명예로운 신분'을 증명하는 일은 없었다. 산티아고 기사단원이 되고자 하는 신청자들은 아래와 같은 조건들을 지켜야 한다.
- 적자
- NO 이교도(부모, 조부모도 무슬림, 유대인이면 안됌)
- 육체노동 생활자가 아니어야 함
- 종교재판을 받은 적이 없어야 함(부모, 조부모도 마찬가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조부모들은 포르투갈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순혈을 중시하던 스페인 기사단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로 받아드릴 수 없었다. (더불어 그의 부친이 교회 공증인으로 일했다는 사실(당시 교회 공증인은 유대인들이 주로 종사하던 직업이었음)이 그가 귀족 혈통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로 역할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산티아고 기사단이 되었다. 어떻게? 그를 총애하는 펠리페 4세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1659년 펠리페 4세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뛰어난 자질"을 이유로 들며, 교황에게 (그를 산티아고 기사단 으로 임명해줄 것을) 탄원했고 교황이 이를 인정하였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로써, 그는 순결하고 고귀하며 명예로운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 죽기 1년 전 최고의 명예를 맛 본 그는 왕실 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팍에 붉은 색 십자가를 더했다. 이것만큼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신분상승에 눈 먼 이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는 일화가 어딨단 말인가?
* 이은해, 스페인 바로크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신분과 혈통에 대한 집착 참고
* 정은경, 벨라스케스 프로이트를 만나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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