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투이 작가의 <루>는 논픽션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베트남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자, 투이의 가족은 보트를 타고 난민 센터를 거쳐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녀는 "루"라는 인물에 난민 신분이었을 때, 그리고 캐나다에서 성공한 베트남인일 때에 느낀 자신의 감정을 투입한다. 담담한 목소리로 써내려간 루의 고통, 소외, 폭력에 관한 스토리는 단숨에 독자를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루>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정리하기 전에, 베트남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되는 인물들인 보트 피플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키호이콴도 보트 피플 출신이다.
1. 보트피플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패배하면서, 베트남은 공산지배를 받게 되었다. 남베트남에서 공화국과 미국을 지지하던 많은 이들은 교화소에 끌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상교육을 받았다. <루>에서는 한 남성의 일화를 통해 당시 베트남 공산당의 무자비함을 표현한다.
"그랜비 산업단지의 장화 공장에서 바닥청소를 하기 전에 그는 판사이고 교수이고 미국 대학출신이고 아버지이고 죄수였다. 장화 공장의 고무 냄새와 사이공 법원 사이에는 2년 동안의 사상 교육이 있었다. 판사로서 공산당 동포들을 재판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었다. 교화소에서는 그가 재판을 받는 족이었다. 그는 전재으이 패자 편에 섰던 다른 수백 명과 함께 줄지어 서야 했다.
교화소는 정글로 둘러싸야 세상에서 고립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반동분자이자 민족의 배신자, 미국인들을 위해 일한 부역자였던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고 공개 자아비판을 해야했다. 나무를 배고 옥수수를 심고 지뢰를 제거하면서 어떻게 속죄할지 생각해야 했다."
남베트남에 살고 있던 많은 이들이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빠져나갔는데 이들을 보통 '보트피플'이라고 부른다. 망명 길에 오른 이들은 남베트남의 하층민부터 상류층까지 다양했는데, 주로 반공주의자, 외국인, 베트남-미국 혼혈아들, 정치범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먼저 탈출하여 한동안 지낸 후 미국, 캐나다, 호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 지점인 난만 센터에서 이들은 한없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투이 작가의 <루>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있다. ("그래서 우리는 200명을 위해 준비된 수용소를 가득 채운 2,000명의 난민에 끼게 된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우리나라에서 보트피플은 전제용 선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자주 언급된 바 있다. 당시 보트피플들은 많은 국가에서 정치적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었는데, 1985년 전재용 선장이 외면당한 보트피플(약 96명)을 구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재용 선장 역시 국내에 들어와서 해임되었고, 정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2. 김 투이 작가의 <루>
"어렸을 때는 전쟁이 평화의 반대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이 전쟁 중일 때는 평화롭게 살았고,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뒤에 오히려 전쟁을 치뤘다. 지금의 나는 전쟁와 평화가 친구 사이라고, 둘이 한편이 되어 우리를 조롱한다고 믿는다."
"어머니는 사이공에서 8학년일 때 교실 칠판에 적혀 있었다는 속담을 나에게 자주 말해주엇다. "도이 라 찌엔 쩐, 네우 부온 라투어"(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
"역사의 증오가 진을 치고 결연하게 새겨진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적인지 희생자인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지 증오하는지, 두려워하고 있는지 불쌍히 여기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꽉 진 주먹을 조금씩 풀어지게 하던 아버지의 음악은 곧 옥상 위로 추방되었다. 책이든 노래든 영화든, 힘찬 팔을 뻗어 낫과 망치를, 금성홍기를 흔드는 남녀의 상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태우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하늘이 자욱한 연기로 덮였다."
"나의 외증조부가 중국인이었다.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열여덟 살에 우연히 베트남에 오게 되었고, 베트남 여인과 결혼해 여덟 자녀를 두었다. 그중 넷은 베트남 국적을 선택했고, 나머지 넷은 중국인이 되기로 했다. 베트남인이 된 넷은 정치가와 과학자가 되었고, 그중 내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중국을 선택한 넷은 쌀장사로 부자가 되었다. 지방장관이던 외할아버지가 중국인이 된 네 명의 형제자매에게 아이들을 베트남 학교에 보내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베트남 쪽 일가는 쓰촨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은 둘로 나뉘었다. 나라도 둘로 나뉘었다. 미국을 따르는 남쪽,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북쪽으로."
"사촌들은 2천 동짜리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남자들의 성기를 주물러준 얘기를 하며 키득거렸다. 주저 없이 거리낌도 없이 자신들이 행한 성행위를 그대로 묘사했다. 매춘은 어른들의 일이고 돈이 오가는 일이라고, 15센트짜리 음식을 얻어먹는 대가로 그런 일을 한 자기들 같은 예닐곱 살 아이들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믿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하게 얘기했다."
-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아팠던 부분 중 하나였다. 아이를 향한 폭력이 너무나도 일상화가 되어있었던 그 시절.
"아오자이의 위선적인 정숙과 가식적인 순결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아이를 열 명 낳은 몸을 서른 개의 고리가 달린 거들에 끼워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랜비 산업단지의 장화 공장에서 바닥청소를 하기 전에 그는 판사이고 교수이고 미국 대학출신이고 아버지이고 죄수였다. 장화 공장의 고무 냄새와 사이공 법원 사이에는 2년 동안의 사상 교육이 있었다. 판사로서 공산당 동포들을 재판했다는 게 그의 죄목이었따. 교화소에서는 그가 재판을 받는 족이었다. 그는 전재으이 패자 편에 섰던 다른 수백 명과 함께 줄지어 서야 했다.
교화소는 정글로 둘러싸야 세상에서 고립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반동분자이자 민족의 배신자, 미국인들을 위해 일한 부역자였던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고 공개 자아비판을 해야했다. 나무를 배고 옥수수를 심고 지뢰를 제거하면서 어떻게 속죄할지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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