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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편혜영 - 홀

by raumkim 202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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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오기는 자신의 아버지를 "고집과 독선이 지나쳤고 자신의 자부가 폭력이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20)"이라고 말하며 증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 오기는 자신의 아버지와 꼭 닮았다. 그러한 모습은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타난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책은 씌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린다는 것."(87)

 

오기는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는 자신의 아내를 알게 모르게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자신의 배려심을 스스로 높게 샀지만, 실제로 그것은 아내를 방치하는 행위였다. 소설의 제목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오기의 가정 밖에서 생겨난 성공을 통해 생겨난 집은 그의 아내를 방치하는 '홀'로 그려진다. 남편이 파 놓은 홀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아내, 그런 아내를 오히려 다그치는 오기의 모습이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아내의 엄마, 그러니까 오기의 장모는 오기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다. 장모에 대한 묘사는 약간 기묘하다. 그녀가 혼혈이고, 지속적으로 한 가지의 일본어만 반복한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장모는 딸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오기를 정성스레 간호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과도하게 신경질 적이다. 장모는 외부세계와 오기의 교류를 서서히 끊어버린다. 오기가 '제이'와의 전화를 시도한 것을 장모가 알고 나서 장모는 오기를 완전히 집에 고립시킨다. 이 때 오기를 두렵게 하는 것은 '모른다'라는 것이다.

 

"장모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오기에게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내가 안다고 믿었던 걸 모두 알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오기가, 도대체 아내가 알고 있던게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158)

 

장모와의 대화를 통해 오기는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오기는 사고로 인해 입을 뻥긋 거리기만 한다. 장모와 오기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불능상태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대화상태와 유사하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대화인데, 누구도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태는 인간을 고립시키고,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오기의 아내는 시도와 포기가 쉬운 사람이었다. 가치 평가를 하자는 게 아니고 팩트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기의 아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유일한 것. 그것은 '오기의 행복의 근원은 오로지 나 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아내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오기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아내는 '오기가 자신을 떠나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아내와 오기의 사고는 아내의 의지로 인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장모는 딸의 이러한 비참한 인생을 깨닫고, 오기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비뚫어진 모정이지만, 그녀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기에 엄마가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하는 복수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공감이 된다. 

 

"오기는 이미 큰 사고를 겪었고, 그것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모두 끝인 줄 알았는데, 그 일 이후에도 보통의 삶과 마찬가지로 거짓말과 오해와 변명이 계속된다니, 이상했다." (112)

 

소설의 제목 앞에 '블랙'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다. 삶, 그 자체는 거짓말, 오해, 변명 그리고 잃을 것으로 가득한 블랙홀 같은 것이다. 오기는 살기 위해 또 어떤 거짓말을, 변명을 했을까 오늘도.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407080

 

이미 뚫려 있던 구멍의 실체와 마주하다!편혜영의 네 번째 장편소설 『홀(THE HOLE)』. 2014년 작가세계 봄호를 통해 발표한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사십대 대학 교수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이야기는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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