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 꼭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구글링을 통해 새로운 카페나 서점에 가보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이번 방콕 여행에서 내가 머문 숙소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스틴그랜드사톤호텔로 잘 알려진 수락삭 역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구글링을 통해 수락삭 역 근처에 있는 카페들을 서치했다. 많은 곳들이 있었지만, 커피 한 잔을 하고 이동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지하철 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나에게 선택된 곳이 바로 ROOTS이다.
https://goo.gl/maps/BdNCUMxC5T7yVCmE9
ROOTS는 방콕의 핫 플레이스 통로에 있는 커먼스에도 있다. 이 전 방콕 여행에서 커먼스에 방문했을 때도 ROOTS에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와 ROOTS AT SATHORN을 비교하자면 이 곳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그곳은 아무래도 다양한 샵이 어우러진 컴플렉스이다보니, 다소 정신이 사나운 감이 없지 않아있다. 반면에 이 곳은 오로지 커피만을 위한 공간이라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하다. 뭐 물론, 개인의 판단에 불과하다.
긴가민가 했던 이 카페가 마음에 들기 시작한 건, 넓은 규모와 그것을 둘러싼 통유리창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디에 앉던지 간에 답답하지 않을 만치 밖을 구경할 수 있었다. 또한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넉넉하니 다른 손님들에 의해 내 시간을 방해 받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래도 근처에 회사들이 많이 있고, 카페의 규모가 커서 그런지 셔츠와 정장을 입고 노트북 앞에서 혹은 전화기를 들고 업무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한량이처럼 카페 인테리어에 감탄하고, 커피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는 것. 이때에 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유치하지만, '너넨 일하지? 난 논다? 부럽지?'하는 약간의 승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곧,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나 역시도 저런 삶 속에서 영유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을 떠나 즐거움을 맛보세요와 같은 여행 홍보 문구는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서도 내가 돌아갈 현실에 대한 걱정은 끊이지 않고, 문득문득 여행의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찾아온다. 처음엔 그게 견딜 수 없게 싫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행복하고자 떠나온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몇 번의 여행과 몇 살을 더 먹어보니, 현실에서 몇백킬로미터 날아와 다른 시간대를 산다고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 속에 있는 다른 모습을 만나는 순간이 여행일 뿐이다. 그러니, 현실 속의 나는 당연히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
ROOTS AT SATHRON의 한 켠에는 다양한 굳즈들이 마련되어 있다. 카페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커피 관련 굳즈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속에는 없지만 그 밖에 다양한 프린트들이 그려져 있는 앞치마와 반팔티가 있었다. 반팔티는 소재도 좋고 해서 좀 사볼까 하고 고민도 했었지만, 가방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결국 내 짐의 일부는 남자친구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가져다 줘야 했다. 헤헤)
이 곳에서 사용하는 원두가 어디서 오는 지 알려주는 그림이다. 꽤나 익숙한 도시 이름들이 보여 반가웠다. 며칠 뒤면 떠날 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 치앙마이에서도 많은 원두가 이 곳 루츠에 오더라. 아무래도 내가 마실 커피가 어떤 지역에서 자라서 이 곳에 오는 지 알 수 있어서 여러모로 신뢰가 갔다.
ROOTS AT SATHORN의 규모는 위의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저 창가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저 뒤의 아저씨 부대가 좀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곳 대신 커피 스탠드 옆에 있는 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의 커피는 보통 100~120바트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방콕의 많은 카페들의 가격대와 비슷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서치해보니 머신 커피도 맛이 훌륭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카페에 찾았고, 위의 지도에서 자신있게 원두의 출처를 밝히는 이 곳의 자신감에 혹해서 브루커피를 주문했다. 기억에 치앙마이 원두는 어차피 치앙마이에 가니까 그때 가서 먹어보자라는 심보에 치앙라이 원두를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문 후에는 이름을 물어보는데, 커피가 완성되면 이름을 불러준다.
1월 중순의 방콕은 더운만큼 푸르렀다.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방콕의 정신 없음은 극도로 싫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끈질기게 버텨내는 많은 식물들은 너무 좋다. 서울처럼 굳이 먼 곳을 찾지 않아도 도심에서 푸르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많다. 이번 방콕 여행에서 나의 카페 리스트에 이 곳을 넣게된 것도 푸르름 때문이다. 더 이상 회색빛 커다란 사각형 들에 나의 시선을 훼손시키지 않아도 되는 공간.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나와 같은 감정을 누리고 싶다면, 이 곳 ROOTS AT SATHORN도 방문해보는 게 좋을 법하다.
그 푸르름에 홀려서 멍 때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kim?'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커피가 완성됐고, 바 좌석에 앉아있으니 내려진 커피를 가져다 준다. 어떤 맛일지 모르니 일단 물 한잔을 마셔서 입을 씻은 후에 쓱 하고 마셔본다. 확실히 머신 커피에서는 쉽사리 느끼지 못하는 깊은 맛이있다. 솔직히 4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건, 방콕에서 오래오래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내가 알기로는 수락삭역 근처에 따른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있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ROOTS에 방문하기 위해서 수락삭 역을 찾으라고 말하기에는 뭐할 것 같다. 며칠 안되는 일정으로 방콕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이. 그러나 이스틴그랜드사톤호텔에 머무는 여행객들은 바로 옆이니 꼭 한 번 이곳에 들러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여유로움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혹은 사톤팍신 역에서 한정거장을 더 가면 수락삭역이 있다. 아시안티크나 시암파라곤에서 돌아와 숙소로 돌아가기 전,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땡긴다면 나는 단연코 이 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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