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여행은 2018년 9월에 이뤄졌습니다. 현재의 상황과 다를 수 있는 점 고려해주세요!*
스위스를 여행하고나서야 나는 '스위스는 날씨가 진짜 중요해'라는 말에 코웃음 친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가를 깨달았다. 스위스 여행의 9.9할은 날씨가 차지한다. 이건 정말 무시하지 못할 여행의 법칙이다. 여행은 온통 자유로 가득하다는 나의 원칙은 스위스에서 깨졌다. 적절한 예로, 피르스트에 올랐는데 정말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푸르른 풀들은 1도 보지 못했고 나는 구름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남자친구의 뒷꽁무늬만 졸졸 따라 다녀야 했다.
우리에게 날씨의 신은 약간 야박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7일이라는 시간 중에 절반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추웠고 흐렸다. 그래서 다른 여행객들이 감탄하는 봉우리 들에 오르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러는 와중에 좋은 날들도 있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게 영 마음에 안들었지만 날이 좋은 어느날 봉우리에 올라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007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쉴튼호른에 말이다.
* 인터라켄에서 쉴튼호른 가는 법
인터라켄 서역/동역 - 라우터브루넨 역에서 하차 - 뮈렌마을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 - 뮈렌마을에서 쉴튼호른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걸어갈 것
뮈렌마을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나는 이미 마음이 콩닥콩닥한다. 아름다움으로만 둘러싸여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에 취하다보면 뮈렌에 도착한다. 뮈렌마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인스타샷' 으로 유명한 통나무 밑동이 있는 곳이다. 조금 걷다보면 그 핫스팟을 만나게 된다. 이미 그 앞에 놓여진 길이 상당히 길었다.
"우리 이럴 시간이 없어! 여긴 이렇게 날씨 좋을지 몰라도, 위에 날씨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가자!" 라고 내가 서둘렀다.
뮈렌마을은 그냥 그 자체가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적합했다. 햇살이 가득 내리쪘고, 동화속에서나 볼법한 집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저 들리는 것이라곤 간간히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쓸리는 나뭇잎 소리들 뿐이었다.
그런곳에 관광객들이 늘어나니, 아무래도 거주민들은 부담이되는 가보다. 많은 집들 앞에 "This is a house, no for travelers"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들이 붙어있다. 집 외부를 곳곳이 카메라에 남겨두고 싶다가도 카메라를 내리고 온전히 멀리서 그것들을 찍은 것이 전부인 이유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주거민들의 일상이 찍힌 나의 사진이 누군가의 불편함이 전제된 결과라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쉴트호른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케이블카가 정차하는 곳들의 기상상태를 보여준다. 슬프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 쉴트호른은 이미 구름에 휩싸인 상태였다. 뭐가 문제인 걸까, 나 나름 여행 다닐땐 엄청난 날씨의 요정이었는데 말이다. 남자친구는 한참을 살펴보더니, "어차피 올라가봤자 희어멀건한 구름만 보고 오는거야. 차라리 그 전인 Birg에서 내리는 게 어때?" 라고 내게 제안한다.
쉴트호른에 오르고 싶었다. 목적을 이루는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스위스까지 왔는데 높다고 소문난 많은 곳들 중 한 곳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나 스위스에서 엄청 높은 곳에 다녀왔다. 막 이런식으로.
아마 피르스트에서 그 고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쉴트호른!"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비르그에서 내리기로하고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여행도 결국 경험이 이끄는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이 다음 여행지에서의 선택을 좌우하고, 그로써 조금 더 나이스한 것들을 또 경험하게 된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여행객들이 꽤나 있었다. Birg에는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오로지 한 곳만을 향유하고 있었다. 넋을 놓게 만드는 웅장함과, 순순한 흰 빛깔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돌, 바위, 풀 그리고 나무 그리고 그것보다 작은 어떤 것들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옹골지게 채워서 이루고 있었다. 온통 다른 모습의 것들이 모여 만든 광경치고는 너무 정갈하지 않나? 무엇하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습 앞에서 절로 숙연해 진다. 그러다 생각보다 추운 마음에 쌀과자에 누텔라 크림을 발라먹는 티타임 시간을 갖는다. 애기들이나 먹는 쌀과자라니? 라고 무시할 수 있는데. 무시할게 아니다. 진짜 굉장한 맛이다.
남자친구와 나는 만약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면 차라리 라우터브루넨이나, 뮈렌마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러글라이딩이 단순히 높은 곳을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거라면 어디서든 해도 좋겠지만, 확실히 주변 환경이 인터라켄보다는 라우터브루넨이나 뮈렌마을이 낫다. 혹시나 패러글라이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하는 게 좋겠다.
이상하다. 분명히 Birg에선 너무 추웠는데, 뮈렌마을로 내려오니 다시 햇살로 인해서 몸이 금새 따스해진다. 우리는 왔던길이 아닌 김멜발트로 향한다. 스위스 여행객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하이킹 길이라고 한다. 하이킹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길이 온통 평지라 조심해서 내려가기만 하면된다.
주변은 온통 산과 나무로 둘러싸여있고, 간간이 보이는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며 내려가는 여행객들 뿐이다. 나는 이 광경이 나의 스위스 여행을 생각했을 때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사람을 스치는 그 바람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다들 이래서 스위스에 오나.
우리는 그늘이 적당히 있는 벤치를 찾고 있었다. 배가 고파왔기 때문에 도시락을 까먹어야 했다. 마땅한 자리를 못찾고 계속해서 걸어내려 가는 데,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 있는 벤치. 저기선 흙을 먹어도 꿀맛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한 미국인 노부부가 보기 좋게 대화중이었다. "아쉽지만 뭐 어쩌겠어" 하고 그곳을 지나치려는데 "We are leaving for your guys, take seats!"라고 노부부가 말한다.
고맙다는 인사 후에 우리는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맥주 한모금을 시원하게 때리니, 이 곳이 천국인가 싶더라. 나 나름의 오그라드는 의미부여일지는 모르지만, 아마 미국인 노부부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때의 그 즐거움을 놓쳤을 수도 있다. 그 이후에 나는 여행을 다니며, 그 누구보다도 다른 여행객들과 좋은 순간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적극적으로 변했다. 누군가의 그 배려가, 지금의 나를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많이 웃고, 떠들며 하이킹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일정은 오전 10시쯤 시작하여 4시가 넘어서야 끝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많은 여행을 하며 유사한 경험을 했지만, 이 날은 유독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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