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 좋다. 읽을지 안 읽을지도 모르는데 외출할 때는 꼭 책을 챙긴다. 지하철에서 혹은 버스에서 두어장이라도 읽으면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 정확히 말하면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위는 얻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의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물론 그 외에 다른 불안 요소도 있다.) 그때즈음부터 책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채워진 책들을 읽어나갔다.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이 업계 종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당인리 책발전소는 최근 몇 년간 생겨난 서점들 중 그나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서울, 판교, 위례에 세 곳에 책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운영하고 있는 김소영, 오상진 부부의 유명세가 어느정도는 반영 된 결과겠지만 두 분 모두 꾸준히 책을 읽고 홍보함과 동시에 책방 일에 꾸준히 애정을 쏟고 있는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김소영님의 인스타 게시물 중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문구가 하나 있는데, 대충 '책을 좋아해서 열심히하는 직원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라는 식의 다짐같은 것이었다. 그 글을 읽고 업계에서 나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서점도 결국 경제적인 수익 창출 부분에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됐던 당인리 책발전소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망원역 1번 출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와 재오픈을 했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던 그 곳에 가보았다. 이 곳이 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알고 싶었기 때문.
하얀 벽에 가지런히 걸어진 '당인리 책발전소' 팻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스타 사진 스팟이어설까,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찰칵.
2층으로 이뤄진 당인리 책발전소는 이 전의 책발전소보다 훨씬 더 정돈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인테리어를 부부가 직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전의 책발전소도 그정도면 훌륭하다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기대치가 높아서였을까 이전의 책발전소는 뭔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기분은 없었는데.
망원동에 새로 문을 연 당인리 책발전소는 그렇지 않다. 1층은 서가로 꾸미고 2층을 테이블을 놓은 공간으로 놓으면서 조금 더 쾌적해졌다고 해야 하나?
물론 상수역의 당인리 책발전소의 가장 큰 매력인 두 부부가 읽고 추천하는 도서 큐레이션 방식은 유지되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들의 큐레이션을 소개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요즘 규모가 좀 있는 서점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을 대부분 컴퓨터로 작성하는 정갈한 포맷을 지향하는데, 이 곳은 여전히 부부를 비롯한 스탭들이 직접 책 소개 내용을 작성하고 있다. 직접 손으로 써내려간 글에는 글쓴이의 고심이 느껴진다. 나는 그러한 정성이 이 곳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도록 만들었을 거라고 믿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각종 굳즈들이 디스플레이 되어있다. 만든 사람 본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에코백부터, 다양한 독립 브랜드의 문구제품들이 있다. 물론 서가 군데군데에도 도서와 관련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나를 꼼꼼이 살펴봐주세요!' 하며 귀여움과 실용성을 뽐내는 제품들이 많아 꽤나 지갑이 들썩들썩 했다.
* 서가는 자세히 찍지 않았습니다. 요즘 많은 서점들이 큐레이션 도용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서요. 큐레이션 역시 한 사람 혹은 한 업체의 노력이 가득 담긴 상품이니까 소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책들은 다양한 장르로 구분되어 진열되어 있으며, 서가의 규모가 보통의 독립서점보다는 큰 편인 것 같습니다.
당인리 책발전소는 서점만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료 및 디저트 메뉴 구성 및 선정에도 꽤나 정성을 쏟는 것으로 알고있다. 나는 아메리카노와 브라우니를 주문했다. 가격대는 망원동 일대의 카페와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살짝 가격이 비싼건가?
맛이 없지도 그렇다고 특별나게 맛있지도 않은 아메리카노인 것 같다. 그냥 가격대비 무난한 정도. 근데 더 브라우니가 정말 맛있었다. 정말 찐득한 초코가 한가득 들어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달까. 크기도 다른 카페에 비해서 큰 편이어서 4,500원이라는 가격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두 개의 조합만 놓고 보자면 책 때문이 아니라, 커피에 디저트 그리고 아무래도 북카페라는 점에서 기대되는 평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들를만 한 곳인 것 같다.
일요일 오후였기 때문일까? 조금 한가로울만 하면 2층은 손님들로 가득찼다. 근데 아무래도 북카페이고 책을 읽는 손님들이 전체 테이블에 반이 넘으니 그냥 방문한 손님들도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나가더라. 2인용 테이블이 족히 10개는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한 켠에는 개인 작업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넓고 긴 테이블이 놓여있다.
한 가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2층 군데군데 꽂혀진 책들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김소영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곳이 사랑받는 이유로 '강제적이지 않은 책 권유'로 꼽고 싶다. 위에서도 언급했다 시피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비율은 책을 읽기 위한 사람과 커피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람으로 나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2층 서가에 꽂힌 서적들을 뒤적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구매하는 거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혹해서 방문하고 그렇게 서가를 둘러보다보면 책을 한 권 집어 자리를 잡게 된다. 결국 책과 개인의 물리적인 거리를 가깝게 함으로써 '책을 접하고 읽어나갈 힘을 기르게 하는 것'. 그것이 현재 당인리 책발전소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인 김소영님이 당인리 책발전소를 준비하면서 쓴 책의 제목은 '진작할 걸 그랬어'이다. 나름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 의해 검열당하고, 외면당하면서도 그것을 표출해낸 사람이 하는 말이 '진작할 걸' 이라는 것에 조금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 말은 걱정했던 것들을 뒤로하고 일을 저지르고 나니 힘들긴 해도 '할만 하네'하는 안도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당인리 책발전소에 있는 동안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배가 고파 이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부랴부랴 싸서 역으로 향하니 이렇게 아름다운 일몰이 나를 반겨준다.
책으로 이뤄진 공간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마음이 좋아진다. 물론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고, 생각보다 심각한 고민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공간에 방문했을 때 그 공간에 대해 일말의 감동과 편안함을 느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 '진작 할 걸 그랬어' 혹은 '할만하네'라고.
나도 언젠가 그 감정을 느껴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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