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좋은 어느 날. 집에 있기는 갑갑하고, 카페나 식당으로 외출을 하기에는 불안해서 호캉스를 하기로 했다. 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느정도 네임벨류가 있는 호텔에서 숙박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호텔 할인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찾아낸 용산 드래곤시티 노보텔 스위트. 부킹닷컴, 데일리호텔, 여기어때에서 가격이 제각각 달라서 조금 더 저렴한 여기어때를 통해서 예약했다. 가격은 15만원대. 대충 찾아보니, 성수기 때가 아니더라도 이 곳의 가격은 보통 25만원 이상이더라.
노보텔 스위트가 있는 용산 드래곤 시티는 용산역 3번 출구에 연결통로가 있어서 수월하게 갈 수 있다. 근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3번 출구로 바로 연결되어져 있는 출구가 폐쇄된 상태라 좀 돌아가야 했다는.
용산 드래곤 시티에는 노보텔, 노보텔 스위트가 붙어있다. 그래서 보통 노보텔에 숙박하는 사람들은 1층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노보텔 스위트 숙박객의 경우 26층 라운지에서 체크인을 진행한다. 그러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26층 라운지가 폐쇄되는 바람에, 1층에서 체크인을 진행하게 되었다.
체온 체크를 하고, 코로나 질문지를 작성하고 나면 어렵지 않게 체크인을 마칠 수 있다. 총 40층 건물에서 38층을 배정받았으니 뷰가 어떨지 벌써부터 아른아른 하게 기대!
주니어 스위트라서 그런지 방 크기가 정말 넉넉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신라 스테이가 보통 9만원에서 10만원 정도 했는데, 돈 오만원 더 주고 여기서 머무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 킹사이즈 침대와 유리창 옆에 놓여져 있는 의자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대형 호텔이다보니, 청결은 논할 것이 없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러모로 신경썼다는 생각도 들고.
욕심일 수도 있지만 티비 사이즈와 일반 티비라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요즘 대부분 호텔과 에어비앤비에서 넷플릭스를 연동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감안하자면 그렇다. 호캉스는 포근한 이불 속에서 티비 보는게 5할 이상은 차지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조금 아쉬움....*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가 되어있다. 청결도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따뜻한 물은 아주 잘 나오고, 샴푸 바디워시 그리고 린스가 구비되어져 있다. 욕실의 규모가 커서 마음에 들었다. 다만 욕실의 규모를 이렇게 크게 할 거면 조금 더 써서 욕조도 넣어줬으면.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곳을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더라 헿.
이 곳은 독특하게 세탁기가 방에 있는데, 세탁기 넣지 말고 욕조를 넣어주지.. 그걸 사람들은 더 좋아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 치약과 칫솔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 곳에서 투숙할 예정이라면 무!조!건! 챙겨서 가는게 좋겠다.
간이 주방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있다. 싱크대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전자레인지도 있다. 식기가 있다고 해서 한참을 찾았는데, 식기는 데스크에 요청하면 필요한 만큼 가져다 주는 거라고. 우리는 신전떡볶이를 시켜먹어서, 수저와 젓가락만 따로 요청했다. 5분 안에 가져다 주시는 서비스 최고?
그리고 네스프레소 머신도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게, 캡슐 네 개중에 두개만 커피라는 것이다. 체크인 한 날 두 개 다 먹어서 다음날 아침에 커피 먹고 싶어서 혼났다는. 무튼 그래도 있는게 어디야.
침대에 누워서 보이는 뷰가 이정도. 솔직히 말하자면 반대 편에 있는 여의도 콘래드 객실 뷰보다 훨씬 좋았다. (콘래드 룸 가격이 이 곳의 두 배가 넘는다.) 서비스나 룸컨디션만 놓고 보자면 이 곳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가성비만 놓고보자면 단연코 노보텔 스위트의 승이다. 따봉 여섯개 쯤 올려줄 수 있을 듯.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일들이 해결될 즈음에 여러가지 장애물에 막혀 헉헉대고 있었다. 코로나도 그 장애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내가 느꼈던 짐들에서 조금은 벗어나 표백된 듯한 공간에 누워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좀 낫다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들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 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p. 64-65
남자친구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썩 내켜하지 않는 눈치지만, 나는 가끔 이런식의 일탈이 필요한 사람이다. 홈 스윗 홈이라는 말마따라 내 집이 가장 좋지만, 한편으로는 집에는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덕지덕지 슬픔을 묻혀놓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곳에서 잠깐은 벗어나 나를 위로하고, 또 자유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여러모로 걱정했었지만, 리프레시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나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걱정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필요가 있을 때, 다시 방문할 것 같은 노보텔 스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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